한 금형이 완성될 때까지 이 도구를 이용해 많게는 20만번까지 반복작업을 한다. “사상작업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금형은 제값의 60~70%밖에 받지 못한다”고 구 사장은 설명했다. 부천/글·사진 임주환 기자 <A href="mailto:eyelid@hani.co.kr">eyelid@hani.co.kr</A>
한 금형이 완성될 때까지 이 도구를 이용해 많게는 20만번까지 반복작업을 한다. “사상작업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금형은 제값의 60~70%밖에 받지 못한다”고 구 사장은 설명했다. 부천/글·사진 임주환 기자 <A href="mailto:eyelid@hani.co.kr">eyelid@hani.co.kr</A>

[경제 재도약] 패러다임을 바꾼다 /
동북아 금형산업 메카 꿈 부천 금형업체들

금형은 ‘물건 만들기’의 처음이자 끝이다. 플라스틱을 비롯한 각종 재료를 녹여 넣거나 압축해 제품을 만들어내는 ‘틀’이다. 금형의 정밀도에 따라 생산품의 품질도 달라진다. 최근에는 컴퓨터로 3차원 설계를 한 뒤 이 정보를 초정밀 가공기계에 전달해 금형을 만들지만, 마지막 1000분의 1㎜의 오차를 잡아내는 것은 사포나 끌을 잡은 사람의 손길이다. 중국을 비롯한 후발 산업국가들이 막대한 규모의 설비투자에 나서면서도 핵심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에선 흔히 기피(3D)업종의 하나쯤으로 치부되는 금형은 실상 반도체나 자동차 못지않은 간판 수출품목이다. 60조원 규모의 세계 금형시장에서 한국은 6조여원의 매출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일본 교역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분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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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금형회사 3700여곳 가운데 800여곳이 몰려 있는 경기도 부천시가 ‘동북아 금형산업의 메카’로의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이곳에서 한국인 고유의 ‘손끝기술’을 이어가면서 첨단·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 ‘강소기업’으로 변신 중인 금형업체들이 몰려 있다.

부천시 춘의동에 있는 정우정밀은 서울 영등포 일대의 ‘마찌꼬바’(영세한 동네공장을 가리키던 일본식 표현)에서 출발해 25년 만에 연간 30억원어치를 일본 미쓰비시에 수출하는 정밀금형업체로 거듭났다. 이 회사의 구인모(44) 대표는 금형의 마무리 작업인 ‘사상’ 일부터 배워 창업까지 나아간 전형적인 현장기능직 출신 경영자다. 그가 2004년 생산효율을 기존 제품보다 70%까지 높이는 이중금형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전통의 손끝기술을 바탕으로 금형업계의 구조적 변화에 적극 대처한 결과다. 외환위기 직후에도 2억여원을 들여 전자제어설비를 갖추는 등 정보기술(IT) 관련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부천디지털금형센터를 통해 기술개발에 대한 조언도 얻었다. 구 대표는 “재료와 작업장 상태에 따라 정밀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만으론 금형을 만들 수 없다”며 “무엇보다 정밀금형업체로 변신에 성공한 핵심 배경은 오랜 세월 함께 일한 엔지니어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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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 원미동의 엠앤드엠은 노트북 컴퓨터의 플라스틱 외장을 얇게 하면서 동시에 휨 현상을 방지하는 박판금형 전문업체다. 요즘 주로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기업들과 거래한다. 이 회사의 김계훈(43) 대표는 “외국 기업들은 중국 업체에 금형을 100% 맡기지 못한다”며 “원천기술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마무리 작업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밀공작기계로 가공한 곡선면도 현미경 단위로 들여다보면 톱니바퀴처럼 거칠기 마련인데, 사람이 직접 그라인더로 쓸어내 매끈한 표면을 만드는 사상 작업을 중국 업체는 흉내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엠앤드엠은 자체개발한 첨단기술과 숙련 기술인력의 노하우 모두를 국외시장 공략의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중국내 대형 금형공장들의 사상작업 관리를 주업무로 하는 독자 법인을 홍콩에 설립하기도 했다.

부천시 금형산업 집적화 단지
부천시 금형산업 집적화 단지

‘손끝기술’로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부천 금형업체들이 나타나게 된 것은 이 지역 금형산업의 탄탄한 역사, 기업인들의 기술개발 도전과 설비투자, 산·학·연 네트워크 및 청년인력의 확보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1970년대 서울의 공해업소 철거 방침에 따라 이 지역에 몰려든 금형업체들은 이후 생활가전, 자동차, 휴대전화 등 수출 주력품목들의 경쟁력을 뒷받침해주는 숨은 주역들이었다. 여기에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운영하는 부천디지털금형센터는 박사급 5명을 비롯한 19명의 연구인력을 갖추고 기술개발, 인력양성 등을 통한 ‘업그레이드’를 돕고 있다. 부천디지털금형센터의 차백순 박사는 “1년여 전부터 부천지역 업체들이 이곳 연구인력을 활용해 새 아이템을 개발하는 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정우정밀을 비롯한 많은 업체들이 조만간 결실을 거둘 것”이라고 자신했다. 해마다 100여명씩 금형을 전공한 신규인력이 공급되는 것도 희망적이다. 가까이 있는 아주자동차대학, 유한대학 등이 정규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고, 인천인력개발원과 부천금형사업협동조합도 ‘단기교육-업체연수’ 형식의 청년채용 패키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연구원의 배규식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부천 금형업체들은 지금 중국의 추격에 따라잡혀 침몰하느냐 아니면 공동의 노력으로 도약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산업화 과정에서 어렵게 축적한 손끝기술을 세계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지속 가능한 전통제조업’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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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몰드밸리 띄워 중국 떨쳐내고 일본 잡을 겁니다” 부천금형사업협동조합 김한주 상무
부천금형사업협동조합 김한주 상무
부천금형사업협동조합 김한주 상무

“금형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한번 만드는 데 수억원의 비용이 들어가니 발주사에서 고민이 클 수밖에 없지요. 부천 몰드밸리(금형집적화단지) 마크가 찍힌 회사라면 세계 어디에서나 믿고 맡길 수 있다는 평판을 얻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금형의 표준화, 인력구조의 고도화, 대외 홍보활동 등에 박차를 가해야겠지요.”

부천금형사업협동조합의 김한주 상무는 “최근 한국 금형산업이 30년 역사상 최대의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고 말했다.

몰드밸리는 올해 5월께 분양에 들어간다. 전체 8만8천평인 오정지방산업단지 가운데 4만8천평이 금형집적화단지다. 규모를 갖춘 완성품 업체들은 분양에 참여시키고, 5천여평의 임대단지에는 종업원 10명 안팎의 영세 임가공 업체들을 입주시킨다는 게 조합 쪽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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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지역 금형업체에서는 1990년대 말과 2000년 초 사이에 대우차 협력사들이 줄도산 사태를 맞자 휴대전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곳이 많다. 하지만 외환위기 직후에는 원화 약세로 일본 수출길이 넓어지고 휴대전화 내수생산이 늘면서 호황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해 사이에는 다시 환율이 급락하고, 국내 대기업 쪽 물량이 크게 줄면서 가동률이 2~3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김 상무는 “결국 부천 금형업체들이 살 길은 수출인데 중국의 추격이 만만치 않다”며 “이미 업체들의 10~20% 정도는 광학렌즈, 박판금형, 나노기술 관련 초정밀 금형제품에서 활로를 뚫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김 상무는 몰드밸리를 통해 ‘협업관계’를 구축해야 부천 금형산업의 미래가 있다고 강조한다. 금형업체는 대부분 종업원이 50명 미만인 소규모 사업장이지만, 정밀금형을 하려면 머시닝센터나 고속가공기 같은 3억~5억원짜리 금형가공기계가 필수설비다. “업종간 집적화가 이뤄지면 금형집들끼리 설비의 공동활용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생산기술연구원을 비롯한 국책연구기관이 입주해 근거리에서 교육시스템을 제공한다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기술을 익힌 숙련인력들이 새로운 첨단기술을 습득하는 데도 유리하다는 것이다. 또 최근 내수는 물론 금형 수출도 납기가 짧아지는 추세인데, “100% 항공편에 의존하는 특성상 인천공항에 가까운 금형집적화단지의 존재가 알려지면 글로벌 기업들의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상무는 “부천은 납기를 단축시키는 면에서 전국 최고 수준인데, 이는 임가공 업체와 완성품 업체의 협업 덕분”이라며 “소규모 임대단지의 효율적 집적이 몰드밸리의 성공 지렛대”라고 설명했다.

“부천 금형업체 중 기술력이 가장 앞선 곳이 1000분의 5㎜ 정도의 오차라면 일본은 1000분의 1~2 정도의 오차를 자랑합니다. 아직 갈 길은 먼 게 현실이지만 분명 희망은 있습니다. 일본의 금형집들에서는 대부분 백발이 성성한 근로자들만 볼 수 있지만, 우리는 젊은 기능·기술인력들이 일본보다 풍부한 편이거든요. 저는 앞으로 조성될 몰드밸리가 일종의 문화공간까지 아울렀으면 합니다. 공원, 공연장, 체육시설 등을 갖춰 공단에서도 ‘문화’를 누릴 수 있다면 더 많은 젊은 인력을 끌어들일 수 있을 테니까요.”

임주환 기자